통일신라의 도시 계획과 ‘금성(경주)’의 구조

통일신라(676~935)는 삼국 통일 이후 한반도 최초의 장기간 중앙집권 국가로, 행정과 종교, 문화를 통합하는 데 있어 도시 계획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도시는 바로 수도 금성(금성, 오늘날의 경주)이다. 경주는 단순한 정치 중심지를 넘어, 불교와 왕권, 귀족 문화가 응집된 복합도시로 설계되었으며, 철저한 계획 아래 공간이 배치되었다. 본 글에서는 통일신라 시기의 수도 금성이 어떤 구조와 철학을 기반으로 건설되었는지, 그 도시 구성 요소와 기능, 미학적 원리, 그리고 유적을 통해 본 실제 모습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도시 명칭과 정치적 상징

금성은 신라의 수도로, ‘황금의 성’이라는 명칭은 왕권의 신성성과 번영을 상징했다. 행정적으로는 ‘왕경(王京)’이라 불렸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계획된 도시였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따르면, 금성은 왕실 중심의 방형 도시로 설계되었고, 좌우 대칭과 음양오행 사상, 불교 세계관이 도시 구획에 반영되었다.

금성의 도시 구조와 배치

금성은 크게 다섯 개의 행정구역(성내 5부)으로 나뉘었고, 각 부는 다시 촌락 단위로 구성되었다. 도심 중앙에는 왕궁인 월성(月城)이 위치했고, 그 북쪽에는 행정청인 시사(市司)와 관청가가, 남쪽에는 불국사상에 근거한 사찰 밀집지와 귀족 거주지가 있었다. 서쪽은 평민과 수공업자, 동쪽은 무덤군과 도성 외곽 방어시설이 자리 잡았다.

주요 시설과 기능 공간

1. 월성(月城): 신라 왕궁으로, 반월형 토성으로 이루어졌으며 외성, 중성, 내성으로 나뉘었다.
2. 첨성대: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건축물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실용적 기능 수행.
3. 황룡사·분황사: 국립 사찰로서 왕권 강화와 불교 이념 확산의 핵심 공간.
4. 시장(시사): 국내외 물품 교류 중심지로, 당나라 및 일본과의 외교 물품 유통 장소로 기능.
5. 무덤군(대릉원 일대): 왕실 및 귀족의 거대한 적석목곽분, 왕권의 시각적 상징.

도시 계획의 철학과 상징성

금성의 도시 배치는 단순한 실용 공간이 아닌, 철학적 구도에 따라 설계되었다. ‘왕궁-사찰-천문대’의 직선 배치는 왕이 천명(天命)을 받아 다스리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불국정토를 구현하도록 조성되었다. 이는 불교적 이상 세계를 지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통일신라의 국정 이념과 맞닿아 있다.

금성의 도시 구조 요약표

공간 기능 대표 유적
중앙 왕궁, 천문대, 중심행정 월성, 첨성대
북부 행정 관청, 상업 기능 시사, 유적 발굴지
남부 불교 사찰, 교육 기능 황룡사, 분황사
서부 평민 거주, 생산 활동 노동촌, 토기 유적지
동부 왕실 무덤, 의례 공간 대릉원, 천마총

맺음말

금성은 단지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왕권과 종교, 과학과 미학이 융합된 통일신라 문화의 결정체였다. 계획도시로서의 경주는 동양 고대 도시 중에서도 드물게 철학과 과학, 종교가 조화를 이룬 공간이며,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유적과 지명, 도시 구조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경주를 통해 우리는 고대 국가가 꿈꾸던 이상 세계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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