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1910~1945)는 단순한 정치적 식민 지배를 넘어, 언론과 사상의 철저한 통제와 검열이 자행된 시기였다. 특히 출판물과 도서에 대한 검열은 조선인의 지식 생산과 공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전략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검열을 우회하거나 저항했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금서(禁書)를 유통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본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도서 검열 제도의 실체와 이에 저항한 지식인들의 구체적인 사례, 그 방식과 의미를 통해 사상 통제 아래서도 꺾이지 않은 지성의 힘을 조명한다.
일제의 도서 검열 체계
일제는 1910년 병합 직후부터 ‘출판법’, ‘사상범 보호관찰법’ 등을 제정하여 출판과 유통을 전방위적으로 통제했다. 모든 서적은 조선총독부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 했으며, 민족의식, 사회주의, 자유주의, 역사 자주성 등이 언급된 문장은 삭제되거나 출간 자체가 금지되었다. 특히 역사, 철학, 언어학, 정치학 서적은 고위 경찰과 일본인 관료의 이중 검열을 받았다.
검열에 저항한 출판인과 학자들
지식인들은 창의적으로 검열을 우회하려 노력했다. 이광수는 『흙』에서 민족과 계급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도 농민의 현실을 묘사하며 계몽 서사를 유지했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은 순우리말로 번역된 과학·역사책을 출판해 검열을 피해갔고, 신채호는 중국, 만주 등지에서 『조선상고사』를 집필하여 국내에 비밀 유통했다. 역사학자 정인보와 문일평도 한자 위주의 문체를 이용해, 일제 검열관이 이해하기 어렵게 글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금서 제작과 비밀 유통
일부 도서는 비밀 출판 형태로 만들어졌다. 고무인쇄기로 소량 인쇄한 책은 ‘밀서’ 형태로 유통되었고, 독립운동 조직이나 학생단체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대표적 금서로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이광수의 『민족개조론』(부분 삭제 이전 원고), 김성수의 『개벽』 등이 있다. 이 책들은 검거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하 독서회나 서당, 교회 등을 통해 몰래 읽혔다.
검열 항의와 사상 투쟁
1920년대 후반부터 일부 출판사와 문인들은 검열 자체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거나, 검열 거부로 폐간을 택하기도 했다. 『조선지광』, 『신여성』, 『동광』 같은 잡지들은 여러 차례 정간과 복간을 반복하며 출판의 자유를 주장했다. 또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소속 작가들은 집단으로 연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용소에서도 사상 교육과 문학 창작을 이어갔다.
도서 검열과 저항 요약표
항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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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제도 | 출판법, 사상범 보호관찰법, 사전 심의제 |
검열 대상 | 역사·정치·철학 도서, 문학, 학술번역서 |
저항 방식 | 비유적 서술, 외국서 번역 위장, 순한글 사용 |
대표 인물 | 신채호, 정인보, 이광수, 주시경 제자들 |
유통 경로 | 비밀 인쇄소, 서당, 교회, 독서회 |
맺음말
일제의 도서 검열은 단순한 출판 통제를 넘어, 민족 정체성과 사상의 뿌리를 말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에 맞선 지식인들의 창의적 저항은 ‘책’이라는 매체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자유와 독립을 향한 저항의 무기였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지식인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지성의 지속적 실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