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청자 도자기 무역과 아라비아 상인의 기록

고려 시대(918~1392)는 불교와 귀족 문화를 중심으로 정교한 예술이 발달한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고려 청자는 동아시아 도자기 역사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미감을 자랑하는 유산이다. 이 청자는 단순히 국내 소비용이 아닌, 동북아시아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아라비아 지역까지 수출된 국제 무역 상품이었다. 특히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중반까지는 고려 청자의 해외 인기가 절정에 달했으며, 아라비아 상인들의 기록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본 글에서는 고려 청자의 제작 기술, 무역 경로, 수출 규모, 아라비아 상인의 기록과 반응 등을 중심으로 고려가 어떻게 국제적 미술 시장에 진입했는지를 탐색한다.


고려 청자의 기술과 특징

고려 청자는 철분이 적은 고령토와 석회유를 활용해 푸른빛을 띠는 독특한 유약색을 구현한 도자기다. 12세기에는 상감기법이 도입되며, 청자 표면에 흑백 상감 무늬를 넣는 방식으로 예술성과 정밀도를 동시에 확보했다. 용천요(龍泉窯)와 달리 투명하고 부드러운 청색이 특징이며, 고려 청자는 특히 불교 의식용 기물, 귀족의 식기, 차 도구로 많이 제작되었다.

청자의 수출 경로와 해상 무역망

고려는 해로(海路)를 통해 주로 무역을 수행했으며, 개경-강화-전라도-제주-오키나와-남중국해-인도양을 거치는 선박들이 존재했다. 청자는 이 항로를 통해 송나라, 원나라, 일본, 안남(베트남), 페르시아 등지로 전달되었다. 주요 항구는 전라도 강진과 부안 지역이며, 이곳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직접 적재되어 출항했다. 제주도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며 무역 선단의 항해를 지원했다.

아라비아 상인의 기록과 교류 흔적

페르시아와 이슬람권의 여러 문헌에는 고려를 “바다 건너의 도자기 왕국”으로 지칭한 구절이 등장한다. 13세기 무렵 아라비아 상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 기록이나, 『무함마드 알-이드리시의 지리서』 등에는 고려 도자기가 ‘물처럼 맑고, 손으로 쥐면 달처럼 빛난다’고 평가되어 있다. 바그다드, 마스카트, 자지라 등지에서는 고려 청자가 출토되기도 했으며, 이는 고려가 단순한 소비 문화국이 아닌,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생산국이었음을 의미한다.

수출 품목과 상대국 반응

고려는 청자 외에도 인삼, 금, 비단, 문방구류, 불상 등을 함께 수출했으며, 아라비아 상인들은 말, 향신료, 약재, 유리 제품, 염료 등을 가져왔다. 고려 청자는 특히 차 문화를 보유한 이슬람 귀족층에서 애호되었고, 일부는 장례용 부장품이나 궁중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도 사원과 귀족 가문에서 고려 청자를 진귀한 보물로 취급했고, 이른바 ‘고려바리’로 불리며 수집 대상이 되었다.

고려 청자 무역 요약표

항목 내용
주요 생산지 강진, 부안, 해남 등
수출 경로 한반도 서·남해 → 중국 → 동남아 → 인도양
수출국 송나라, 일본, 베트남, 페르시아
아라비아 기록 “달처럼 맑고 밝은 도자기”, 고급 무역품
의의 고려 청자의 국제 경쟁력과 문화 수출 성과

맺음말

고려 청자는 단지 예술적 기교의 상징이 아닌, 고려라는 나라가 국제 무역 네트워크 속에서 문화와 기술을 수출한 대표 사례였다. 아라비아 상인들의 기록과 페르시아 출토 유물은 고려가 세계의 일원으로서 문명 교류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려 청자는 그 빛깔만큼이나 당시 동아시아를 넘어 중동까지 반짝였던 한국 고대 경제와 문화의 증거이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