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통합하여 건국한 국가로, 당나라와의 교류 속에서 고구려의 전통과 중국 문화를 융합한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일반적으로 발해는 외교와 군사력 중심의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교육 제도와 문치주의 역시 중시한 국가였다. 발해는 왕실과 귀족 자제들을 위한 고등 교육 기관을 운영했으며,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학문적 기반도 존재했다. 본 글에서는 발해의 교육 체계와 고등 교육 기관의 존재 여부, 과거 시험과 같은 관리 선발 제도, 그리고 당나라 유학과의 연계 등을 중심으로 발해 지식 문화의 깊이를 조명한다.
발해 교육 체계의 배경
발해는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의 유산을 계승하며, 문무를 겸비한 관료 체계를 갖추려 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 관료 육성은 필수였고, 이에 따라 귀족 자제들을 위한 교육 제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당나라의 율령 체계를 일부 수용하면서 유학적 질서와 과거 제도에 유사한 형식도 갖추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독서와 글쓰기 능력, 한문 실력을 중요시하는 교육 풍토가 조성되었다.
발해의 교육기관: 주자감(胄子監)의 존재
중국 『신당서』 발해전에는 발해가 '주자감(胄子監)'이라는 교육기관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나라의 국자감(國子監)과 유사한 이름으로, 왕족과 귀족 자제들에게 유학, 율령, 문서 작성 등을 교육한 고등 교육기관으로 해석된다. ‘胄子’는 귀족 자제를 의미하며, ‘監’은 감독하고 지도하는 교육 기관의 의미이므로, 주자감은 오늘날로 치면 귀족 대학이나 관립 아카데미에 해당한다.
교육 내용과 과목 구성
주자감에서는 경전(사서오경), 역사서, 율령 체계, 당나라 문서 작성법, 시문 창작 등을 교육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료가 되기 위한 교양과 법률 지식, 외교 문서 작성 능력은 특히 중시되었고, 당나라 유학생 출신 관료들이 귀국 후 교육을 맡기도 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서예나 음률 같은 교양 과목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왕세자나 고위층 자제는 별도의 가정교사를 두는 경우도 있었다.
당나라 유학과 학문 교류
발해는 당나라에 수십 차례 사신을 보내며 양국 간 문물 교류를 활발히 했고, 이 과정에서 유학생도 함께 파견되었다. 『구당서』, 『신당서』에는 발해인이 국자감에서 수학한 기록이 있으며, 이들은 귀국 후 외교관이나 학자로 활동했다. 이러한 유학 경험은 발해 내 고등 교육 체계의 정착과 교과 내용 정립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과거 시험 제도를 일부 모방한 관료 선발 시스템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발해 교육 제도 요약표
항목 | 내용 |
---|---|
교육기관 | 주자감(귀족 대상 국립 학교) |
대상 | 왕족 및 귀족 자제, 고위 관료 자녀 |
교육 과목 | 유학 경전, 율령, 역사, 문서 작성법 등 |
당나라 유학 | 국자감 유학, 귀국 후 교육 및 외교 활동 |
의의 | 발해 문치주의 기반, 학문 수준 증명 |
맺음말
발해는 단순한 군사 강국이 아닌, 교육과 문화를 중시한 문치국가의 성격을 함께 지닌 국가였다. 주자감이라는 교육기관은 발해가 독자적 지식인 계층을 육성하고, 국가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하려 했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비록 기록이 많지 않지만, 당대 최고 문명국과의 학문 교류와 내부 교육 시스템을 통해 발해는 문화적으로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려와 조선의 관학 제도로도 이어지는 교육의 흐름 속에서 발해가 놓인 중요한 위치를 시사한다.